미 군인이 탈북을 선택했던 이유와 지옥같은 삶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4년 어느 여름날, 미국의 군함이 통킹만 앞바다를 순찰하던 중 북베트남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더 확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엄청난 인원의 미군을 계속해서 베트남 전쟁에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남한과 북한사이 비무장 지대에 주둔하고 있던 몇몇의 미군병사들은 베트남으로 보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휴전중인 국가에 있다가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베트남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이에 결국 DMZ를 건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의 투항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들의 계획은 북한에 투항한 뒤 소비에트 연방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들 모두 먼저 소련으로 추방이 될것이고, 그 후 미국과의 포로 교환을 통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계획을 세웠던 찰스 젠킨스와 3명의 미군들은 1965년 1월 5일 몇캔의 맥주를 마신뒤 월북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모든일이 그렇듯, 상황이 그들의 계획대로만 돌아갈리 만무했습니다. 소련은 이 네명의 망명 신청을 모두 거부한 후 다시 북한군에게 그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결국 북한의 포로가 된 그들은, 흐르는 물 조차 없는 아주 조그만 하나의 방에 감금되어 7년동안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7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깜깜한 감옥과도 같은 방에서 나오게된 네명의 병사들은, 그 후 김일성의 주체철학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10시간씩 한글로 적혀있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외워야 했으며,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경우에는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경비원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젠킨스는 북한의 선전 영화인 이름없는 영웅들(Unsung Heroes)에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젠킨스는 이 영화에 억지로 출연한 것이었지만, 미국에 살고있던 그의 가족들에겐 이 영화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찰스 젠킨스는 평양 외국어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일본에서 납치된 21세의 일본 간호 학생 히토미 소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젠킨스는 소가를 만나고 나서부터 탈북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의 삶을 '지옥'이라 말하는 찰슨 젠킨스는, 2004년 당시 일본의 총리인 고이즈미의 2차 방북을 통해 일본으로 넘어 갈 수 있었습니다. 미군으로써 북한에 투항을 했다는 점때문에 일본으로의 송환을 보류하기도 했었으나, 고이즈미가 직접 미 정부에 그에 대한 처벌을 감형해 줄것을 요청하면서 북한에서의 40년 삶을 마감한 후 일본에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후 부인 소가의 고향인 니가타현 사도시에 거주하며 자신의 와이프와 같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에 관한 것을 국제문제로 부각 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그후에는 북한에서의 40년 생활을 기록한 '고백'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후로 사도시 관광센터에서 기념품을 판매하는 일을 했던 찰슨 젠킨스는 지난 2017년 12월 11일, 77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을 마감하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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