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의 역사 라이트 형제 첫 비행 및 청부살인업자 리처드 쿠클린스키

12월 17일에 일어난 역사

남장을 하고 대륙 군에 복무했던 데보라 샘슨이 태어났으며 베네수엘라의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가 사망했고,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이 있었던 날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청부 살인업자 리처드 쿠클린스키가 체포된 날입니다.

 

 

 

 

 

 

 

 

 

1760년 데보라 샘슨 출생

1760년 12월 17일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남장을 하고 대륙 군에 복무했던 미국의 여성 영웅 데보라 샘슨이 매사추세츠주 플림톤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미국 독립전쟁 최초 여성 영웅으로 떠올랐던 데보라 샘슨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자신의 가슴을 천으로 묶어 남장을 한 뒤 매사추세츠 미들버러에 위치하고 있는 육군 부대에 입대하여 군인으로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1783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병에 걸린 후 치료를 위해 겉옷이 벗겨지기 전까지 약 17개월 동안 전쟁에 참전했으며, 그녀의 정체가 알려지게 된 이후 미국 건국의 아버지 헨리 녹스 장군에 의해 명예 제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샘슨은 당시 조언이 담겨있는 쪽지와 집으로 갈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투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던 데보라 샘슨은 1782년 7월 3일 뉴욕 태리타운 외곽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이마와 허벅지에 총상을 입게 되었는데 입원을 하게 되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었기 때문에 부대로 복귀하는 도중 스스로 주머니칼과 재봉 바늘로 허벅지의 총알 2개 중 하나를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미처 치료하지 못한 다른 하나의 총알을 평생 품은 채로 살아갔던 데보라 샘슨은 제대 이후 전시 복무에 대한 강의를 이어나갔고 끝없는 청원 끝에 퇴역군인으로서 인정받게 되어 후손들까지 연금을 수령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30년 시몬 볼리바르 사망

1830년 12월 17일은 베네수엘라의 독립운동가이자 그란 콜롬비아의 초대 대통령인 시몬 볼리바르가 사망한 날입니다. 1799년부터 1802년까지 약 3년 동안 멕시코와 유럽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풍부한 학식을 갖추게 된 볼리바르는 귀향 후 독립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프란시스코 미란다와 안드레스 베요와 함께 베네수엘라 제1공화국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유학길에서 알게 된 프랑스혁명에 고무되어있었던 시몬 볼리바르는 이후 독립에 매진하게 되었고, 짧은 생애 동안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개국을 스페인 지배에서 해방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희생 이미지가 강한 볼리바르는 쿠바 혁명의 주역인 체 게바라와 함께 중남미에서는 종종 예수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1903년 12월 17일은 미국인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비행에 성공한 날입니다.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제작하여 성공시킨 라이트 형제는 항공계의 개척자이며, 항공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100명에서 '당연히'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라이트 형제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항공기는 아예 존재하지 못했거나, 발명되었더라도 매우 늦게 만들어졌을 것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항공기는 물론 공군의 역사도 크게 늦춰졌을 것이고 세계대전의 결과도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은 없다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라이트 형제는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생물인 인간의 하늘을 향한 동경과 열망 그리고 수많은 실패 끝 결국 꿈을 이루어낸 인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위인 중 하나입니다.

 

 

 

 

 

 

 

 

 

바람의 크기 및 일정 속도의 바람이 부는 곳을 찾아 해 맨 끝에 라이트 형제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던 작은 마을 키티호크를 찾게 되었고, 해당 지역을 연구거점으로 삼아 3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1903년 12월 17일 프랑스계 글라이더 조종사이자 비행기 연구가인 옥타브 샤뉘트를 포함한 안전요원 5명이 보는 자리에서 최초의 동력 비행기 플라이어 1호를 성공적으로 비행시켰습니다. 플라이어 1호는 하늘로 날아올라 12초 동안의 짧은 비행에 성공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라이트 형제는 바람, 수소와 같은 기체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난 '인류 최초의 비행'이란 업적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1986년 리처드 쿠클린스키 체포

1986년 12월 17일은 미국의 살인 청부업자 리처드 쿠클린스키가 '아이스맨 작전'에 의해 체포된 날입니다. 절도 조직을 운영하고 해적판 성인영화를 판매했으며 최소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리처드 쿠클린스키의 가족들은 그를 다정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쿠클린스키는 사망 시간을 위장하기 위해 희생자 중 한 명의 시신을 얼리기도 했었고 이로 인해 당국으로부터 아이스맨(ICE MAN)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돈벌이가 되는 사업 거래를 약속하면서 사람들을 유인한 다음 죽이고 돈을 훔쳤던 쿠클린스키는 비밀이 새 나가는 것을 우려해 동료 두 명도 살해하였으며, 5건의 살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알코올, 담배, 총기 단속국의 특수 임무팀은 '오퍼레이션 아이스맨(아이스맨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18개월 동안 쿠클린스키를 쫓게 되었습니다.

 

 

 

 

 

 

 

 

 

결국 특수 임무팀에게 체포된 쿠클린스키는 1988년 5건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2003년에는 자신이 피터 칼라브로라는 이름의 경찰관을 살해했다고 자백하면서 추가로 30년을 더 받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살인 유죄 판결 후 쿠클린스키는 검사, 범죄 학자 및 정신과 의사들과 인터뷰를 했었는데 당시 그는 자신이 최소 100명에서 200명 정도의 사람들을 살해했다고 주장하였고 또한 소름 끼칠 정도의 수법들까지 모두 털어놓았었지만 그가 말했던 것 중 어느 것도 확증이 되지 않으면서 그의 주장은 묻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마피아 암살자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던 리처드 쿠클린스키는 2006년 3월 5일 72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 2014년에는 그를 모티브로 한 아이스맨(The Iceman)이라는 이름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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