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로 남은 1912년에 일어난 바비던바 실종사건

1912년~13년 당시 미국은, 바비 던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의 실종사건으로 모든 도시가 떠들썩해 있었습니다. 


바비던바는 레시와 퍼시던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들로, 1912년 8월 루이지애나주 스웨이즈 호수 근처로 함께 낚시 여행을 갔다가 실종된 4살짜리 아이였는데요.


당시 미국 전역에서는 실종된 아이를 찾기위하여 매일마다 티비, 신문의 주요 뉴스로 이 사건을 보도했으며, 그래도 찾지 못하자 당국까지 발벗고 나서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지 8개월째 되던날, 바비던바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소년이 미시시피주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당시 던바를 데리고 있던 사람은 William Cantell Walters와 그의 파트너인 Julia Anderson이였는데요, 월터스는 그 소년의 이름은 찰스 부르스 앤더슨이며, 줄리아 앤더슨이 이 아이의 양육권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를 찾은 직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신문 기사가 났었는데요, 여기에서 이상한점이 하나의 신문사에서는 소년이 그녀의 엄마를 보았을때 '엄마' 라고 외치면서 포옹을 했다 라고 적혀있는 반면에, 다른 신문사의 기사에는 바비던바는 울었고, 레시 던바는 잘 모르겠다'라고 이야기 했다라는 기사가 올라왔었다고 합니다.



어쨋든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요 월터스와 앤더슨은 이 아이는 바비 던바가 아니라 자신들의 아들인 찰리 부르스 앤더슨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했지만, 점점 길어지는 법정싸움동안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었던 월터스와 앤더슨은 결국 아이를 던바부부에게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루스의 아버지는 납치 혐의로 2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던바 부부에게 돌아간 바비던바는 가족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다 1966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바비가 아니라 찰리 부르스라 주장했던 앤더슨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며 7명의 자녀를 가졌던 앤더슨은 후에 자신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긴 하지만, 잃어버린 아들 브루스(바비 던바)가 보고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으며, 던바의 가족이 브루스를 납치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바비 던바가 사망하고 시간이지나, 던바의 손녀 중 한명인 마가릿 던바 커트라이트는 하나의 사건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할아버지와 관련된 사건을 보게 되었는데요. 커트라이트는 당시 그 사건을 조사하면서 할아버지가 던바라는 것을 증명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였지만,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녀는 그녀의 신념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4년 Associated Press의 한 기자가 커트라이트의 조사내역을 가지고 가족에 접근 하여 DNA검사를 받는것이 어떠냐고 물어봤고, 밥 던바 주니어는,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DNA검사를 받는것에 동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이 벌어진지 약 90년만에 DNA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는데요. DNA 검사결과 바비던바와 던바 부모님의 DNA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의 이름은 바비던바가 아닌 찰스 브루스였으며 월터스는 억울한 옥살이를 살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바비던바가 낚시여행중 스웨이즈 호수에 떨어졌다, 악어가 먹었을것이다 등 다양한 추측들이 떠돌아 다녔지만, 아직까지도 1912년 스웨이즈 호수에서 사라진 실제 바비 던바의 운명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바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