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의 근거가 된 암석에 묻혀있는 '성검'

이탈리아의 시에나 외곽에는 아더왕의 '엑스칼리버' 전설과 같은, 단단한 암석에 묻혀 있는 900년 된 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암석에 묻혀있는 이 검은 갈가노 구이도티(Galgano Guargotti)라는 이름의 한 중세 기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검만큼은 그 누구도 절대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148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구이도티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부유한 환경 탓에 비교적 쉽게 기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 기술에 매우 숙련되어 있는 기사였지만 거만하고 폭력적이었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쾌락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갈가노 구이도티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명예와 부유한 삶을 버리고 동굴에서 은둔자로써 살아갈 예정이라 말했습니다. 그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의 선택에 놀라움을 표시했고 그의 어머니는 구이도티를 만류하며 '너에게 어울리는 비싼 귀족들의 옷을 입고 그냥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완강했으며 자신의 선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가 이와같은 선택을 했던 이유는 유일하게 자신이 믿었던 대천사 미가엘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느날 동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구이도티에게 깨달음을 주게 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구이도티 앞에 나타난 대천사 미가엘(archangel michael)은 그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적인 포기해야 하며, 대신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십이사도가 있는 로톤다 디 몬테시피 (Rotonda di Montesiepi)의 언덕으로 가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구이도티는 대천사의 지시에 따라 로톤다 디 몬테시피 언덕으로 향했고, 그후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검'을 바위에 밀어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가난한 농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빈곤하지만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4년 후, 루시우스 3세는 구이도티를 성자로 인정하겠다 선언했으며 그 후 그의 칼을 꽂았던 몬테시피 주위에 Cappella di Monte Siepi라 알려진 채플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매우 오랜시간 동안 이곳은 중세의 칼을 훔치기 위한 수 많은 도둑들의 침입을 받게 되었습니다. 칼이 꽂혀있는 곳의 다른 공간에는 미이라의 손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데, 이 미이라들은 모두 구이도티의 칼을 훔치기 위해 이곳에 접근했던 도둑들의 손이며 칼을 훔치려는 시도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일부로 그곳에 미이라를 남겨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전설이 사람들에게 매우 오랫동안 알려져 왔고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단순히 누군가 임의로 칼을 암석에 박아 놓은 것일뿐 실제로는 기간적으로 얼마되지 않은 검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2천년대 초반에 진행되었던 하나의 테스트는 이 검이 실제 12세기 때에 사용되었던 검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탄소연대 측정결과 함께 있던 미라들도 12세기 부터 존재했던 것임을 확인 시켜주었습니다. 또한 이 테스트는 암석 아래에 있는 공동의 레이더 분석을 제공했으며, 이에따라 암석밑에는 기사의 몸이 있을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이디토의 몸이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아더왕의 성검인 '엑스칼리버' 전설이 구이도티의 이야기를 근거로 만들어 졌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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