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만명의 독일인을 죽이려 했던 '유대인 비밀결사대'

세계 대전 종식 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나치 전쟁 지도자들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이 그들의 홀로 코스트 범죄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소된 전범은 고작 24명 뿐이었고 그중 단 10명만이 사형집행을 받게되었기 때문입니다.


뉘른베르크 재판 이전부터 많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식이 나치와의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나치에 대한 그 분노가 더욱 커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동시에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정의를 지키기 위한 '유대인 자경단'을 결성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곳곳에 있는 수많은 나치당원 들을 찾아 그들을 살해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바 코브너(Abba Kovner)는 이것마저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정의를 믿었던 그는 나치 당국이 유대인 600만명을 살해한 것처럼, 6백만명의 독일인도 같은 운명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코브너는 직접 '나캄'(Nakam 또는 Nokmim)이라 불리우는 하나의 민병대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뉘른베르크, 바이마르,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및 뮌헨에 공급되는 수도에 독을 유입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수백만명의 독일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Plan A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중반까지 코브너는 플랜 A를 구현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50여명의 신병을 새롭게 고용하였습니다. 엔지니어와 근로자들로 위장된 나캄 어벤저스는 각 대상 도시의 상수도에 침투하였고, 그후 이 수도들이 독일 가정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캄의 지도자 아바 코브너는, 세계 시온주의 기구의 의장이자 과학자였던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을 만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향했습니다.




아바 코브너가 세계적인 화학자이자 1948년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으로 등극하기도 했었던 하임 바이츠만에게 바랬던 것은,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강력한 '독'이었습니다. 당시 바이츠만은 해당 독이 600만명의 독일인을 죽이는데 사용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이 독이, 핵심 나치 당원 몇몇에게만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플랜 A는 대량의 비소를 얻기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프랑스 툴룬으로 항해하던 아바 코브너가 프랑스 선상에서 체포되는 바람에 불발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브너가 체포된 경위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엄청난 테러가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것이라 생각한 다른 유대인 민병대 진영이 그를 밀고했을 것이라는 소문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독을 전달할 수는 없었기에 코브너는 당시 같이있던 자신의 와이프에게 Plan B로 대체하라는 메모를 넘겨 주었습니다. 플랜 B는 뉘른베르크 전범 중 나치의 친위대 대원 1만 5천여명이 수감되어 있었던 슈탈라크 13(Stalag 13)을 겨냥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코브너를 대신하여 새롭게 지도자로 등극한 조셉 하마츠(Joseph Harmatz)의 명령에 따라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계획 플랜 B는 연합군 포로 수용소 Stalag 13으로 들어가는 식량에 비소를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Stalag 13으로 들어가는 빵제조 업체에는 이미 나캄의 내부자가 있었습니다. 내부자를 통해 이들은 엄청난 양의 비소를 뉘른베르크로 밀수입할 수 있었고, 그 후 해당 제조 업체의 지하 창고에 이 비소를 모두 저장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6년 4월 13일 마침내 접착제와 비소가 혼합된 코팅이 발라져 있는 수천여개의 빵 덩어리가 Stalag 13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해당 빵을 섭취했던 수천명의 나치 친위대 대원들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이 들려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AP는 비소가 든 빵을 먹은 나치 수감자 1900여명이 병원에 후송되었다는 보도를 전했고, 그 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2,238명의 나치 당원이 병원에 실려갔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소빵으로 인해 몇명의 나치 수감자가 목숨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당시 하마츠는 최소 3~400명정도는 죽었을 것이라 추정했지만, 비밀리에 작성되었던 문서에 따르면 이 비소 빵은 단 한 사람도 사망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후 진행된 조사결과 이들은 약 6만명에 달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비소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양이 얼마였던지 간에 그들은 비소를 이용해 단 한명의 목숨도 빼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대원들은 그 즉시 이탈리아 및 체코를 거쳐 이스라엘로 피신을 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아바 코브너가 원했던 거대한 복수작업을 시도하는 대신 이스라엘의 형성과 방위에만 그들의 노력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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