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이념과 체제의 대립으로 긴장감이 조성되어 있던 냉전시대 당시 소련과 미국은 어느쪽이 시스템의 우위를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에게 증명할 수 있는지를 겨루고 있었으며, 이들의 '증명'에 관한 부분은 지구라는 행성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둘중 누가 먼저 사람을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하려고 시도하면서 과학적 자원을 한계까지 밀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타난 그 대답은, 사회주의쪽이 보다 우위에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소련은 1956년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궤도에 진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1961년에는 유리 가가린이라는 최초의 우주인 까지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로인해 우주경쟁에 있어서 만큼은 소련이 미국보다 한수 위인 것처럼 보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알려졌던 여러가지 정보에 의하면, 소련의 성공 뒤에는 엄청난 수의 희생이 뒤따랐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60년 소련 로켓이 발사대에 불을 붙였을 당시, 최소 78명의 지상 승무원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가가린이 우주 비행을 하기 직전인 1961년에는, 소련의 한 우주 비행사가 산소가 풍부한 훈련용 캡슐 내부에서 격렬한 화재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에는 우주 캡슐에 낙하산이 열리지 않아 다른 우주 비행사가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자들 조차 사망한 전체 인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오랜 주장이 있었으며, 그중 몇몇은 우주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존재했습니다.
1960년 공상과학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은 소련을 여행하던 중 한명의 사관후보생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발사 캡슐의 안내 시스템이 우주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면서 지구 궤도에서 좌초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련측은 공식적으로 이 발사가 무인 시험 비행이었다고 주장하였지만, 하인라인은 그곳에 우주비행사가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두명의 이탈리아 아마추어 무선 통신 사업자가 해당 우주선으로부터 다수의 무선 전송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하인라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습니다.
토리노 출신의 형제 Achille와 Giovannia Judica-Cordiglia는 1957년부터 소련의 우주 프로그램 전송을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해당 우주선에는 분명히 사람이 타있었고 우주를 처음으로 여행한 사람도 유리 가가린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은 1960년 11월 소련 우주선으로부터 모스 부호로된 SOS전송을 받았었는데, 해당 전송을 기반으로 우주선이 지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이에 따라 소련이 마침내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 소련 우주 비행사들의 비상 전송이라고 주장하는 9개의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녹음한 것 중 하나에는 러시아말을 하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 녹음내용이 진짜였다면, 그녀는 가가린 보다 먼저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인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우주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당연히 소련 정부는 그들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이 녹음 파일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었지만 실제 소련에게는 이와 같은 일을 벌이지 않았다는 몇가지 증거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Judica-Cordiglia형제의 녹음 파일 또한 요즘시대에는 위조로써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신들보다 우주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미국이 소련을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와같은 루머를 만들어냈다는 설도 존재했습니다.
물론 미국이 이러한 일을 벌였다는 것도 세계 최초의 우주인이 여성이였다라는 것도 모두 루머에 불과한 것이지만, 자신들의 과학기술로 이념의 우위를 보여주려 했던 이들의 경쟁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