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10월 12일 오늘의 역사 콜롬버스 신대륙 발견 및 시드비셔스

10월 12일에 일어난 역사적인 일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신대륙에 도달했고 첫 번째 옥토버페스트가 개최됐으며 낸시 스펀겐이 죽음을 맞이한 날입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신대륙에 도착

1492년 10월 12일은 콜롬버스가 아시아로 가는 서쪽 경로를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날입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탐험가가 되기 이전 그의 동생과 함께 지도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존 관념과는 다르게 지구는 둥글고 세상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콜롬버스는 바다 서쪽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가 아니라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에스파냐의 여왕인 이사벨 1세로부터 후원을 받아 탐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를 찾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했던 콜롬버스는 1492년 10월 12일에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죽을 때 까지도 그는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아시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1503년 아메리고 페스 푸치가 콜롬버스가 항해한 곳이 아시아가 아니라 신대륙이었다고 말하면서 이 땅에 현재의 이름인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건국 서사시를 마련하고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콜롬버스의 항해에 관한 신화를 발굴하고 재창조해냈으며, 콜롬버스의 날이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정식 명칭을 콜롬비아구로 명명했습니다.

 

 

 

1810년 첫번째 옥토버페스트 개최

1810년 10월 12일은 뮌헨에서 첫 번째 옥토버페스트가 열린 날입니다.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열리는 독일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는 지금은 맥주, 음식, 재미 등을 위해 전 세계인들이 찾고있는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바이에른 왕세자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였습니다. 매년 600만명이 찾아오고 있는 옥토버페스트의 영업시간은 아침 10시부터 밤 11시 30분까지이며 밤 8시부터는 공식적인 맥주타임이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1875년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탄생

1875년 10월 12일은 알레이스터 크로울리가 태어난 날입니다. 영국의 작가이자 시인인 크로울리는 퇴폐적인 생활 방식, 에로틱, 비주류 주제에 관한 글들로 많은 영국인을 놀라게 했으며 흑마술, 타로, 마도서 등을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현대 오컬트 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크로울리는 당시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으로 불리우기도 했으며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와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는 크로울리의 추종자로서 크로울리가 살았던 저택과 의식 때 입었던 옷가지 등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1960년 10월 12일은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생방송에서 암살당한 날입니다. 그를 찔렀던 야마구치 오토야는 당시 나이 17세로, 극우단체인 대일본 애국당의 당원이었습니다. 야마구치는 친 중국 정책과 친노조, 사회주의 성향을 보이던 일본 사회당의 정책에 반감을 품고 인사들의 암살을 계획했습니다. 야마구치 오토야의 피해자인 아사누마 이네지로는 일본 사회당 중앙 집행 위원장이었으며, 야마구치는 연설중이던 단상에 올라 식칼로 세 번 찔러 아사누마를 살해하였습니다. 아사누마는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체포된 야마구치는 치약을 이용해 벽에 '칠생보국 천황폐하만세'라는 문장을 쓴 뒤 감옥에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아래 사진을 찍은 기자는 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78년 낸시 스펀겐 사망

1978년 10월 12일은 낸시 스펀겐이 뉴욕 첼시 호텔에서 20세의 나이로 사망한 날입니다.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의 여자 친구였던 낸시 스펀겐은 화장실에서 검은색 브라와 팬티만을 입은 채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당시 그녀의 하복부에는 자신이 어제 시드 비셔스에게 선물한 칼이 박혀있었습니다.

 

 

 

아침에 시체를 발견한 시드 비셔스는 울면서 호텔 로비로 달려가 앰뷸런스를 부르라고 소리쳤고 경찰이 호텔에 도착했을때 그는 울면서 호텔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에 '내가 죽였다 나는 더러운 개다'라고 진술했지만 죄를 입증할 아무런 알리바이가 없었기 때문에 나흘 만에 감옥에서 풀려나게 됐습니다. 나흘 동안 두 번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시드 비셔스는 1979년 2월 2일 대량의 헤로인을 투여한 후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1986년 시드와 낸시라는 영화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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