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대, 지오바니 알디니는 (Giovanni Aldini)는 어린시절부터 삼촌인 루이지 갈바니 (Luigi Galvani)가 실험을하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이탈리아의 의학자이자 생리학자 겸 물리학자였던 루이지 갈바니는 10년이 넘는시간을 개구리연구에 바쳤습니다.
그는 해부실험도중 개구리의 다리가 기전기의 불꽃이나 해부도와 접촉할때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현상을 연구한 결과 이것이 전기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광기의 과학자'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게됩니다.
지오바니 알디니
그의 삼촌이 이러한 무시무시한 실험을 한 후 지오바니 알디니가 같은 분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한 지오바니 알디니는 삼촌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갈바니의 개구리처럼 근육을 경련시키는 실험을 공개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삼촌이 사망하자 알디니는 뭔가 다른 것을 갈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곧 유럽각지를 여행하면서 양, 돼지, 소, 말 등의 시체에 고압 전류를 흘려넣어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되살릴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것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오바니 알디니의 실험은 대부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알디니는 뭔가 새로운게 필요했습니다. 그는 죽은 동물의 시체로 할 수있는 모든 일을 성취했으며 이것은 그를 더이상 자극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알디니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1800년대 초반 이탈리에서는 시체를 조달하는 것이 오늘날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당시 마조레 광장에 참수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절단된 신체 일부를 얻어와 움직임을 이끌어내기 위해 초기 전지를 이용했습니다.
알디니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동전기라고 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렀다 되돌아오는 전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 안에 있는 동전기와 똑같은 전기를 기계를 이용해 흘려보내면 그로 인해 죽은 생명체를 되살릴 수 있고 더 나아가 생명체를 창조하는데 다가설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기를 이용해 생명을 되살리는 걸 사람들앞에 증명해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802년 1월,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참수된 시신으로 공개 실험을 거행했습니다.
알디니는 참수된 얼굴뿐만 아니라 잘린 몸통에도 전기를 흘려보냈고 시신은 들썩거리는 움직임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생명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선 주요 장기 즉 심장이나 폐가 전기에 의해 움직이게해야했습니다. 그렇게 알디니는 시신의 폐에 전기를 흘려보냈습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횡격막이 움직여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지만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공개 실험이 성공하지 못하자 알디니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실패의 원인이 참수당한 시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알디니는 죽은 자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신선하고 건강하며 온전한 시체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온전한 시신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영국의 런던이었습니다. 런던에서는 참수형 대신 교수형을 주로 행했기 때문에 알디니와 같은 사람들이 막 교수형이 처해진 시신을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1802년 12월, 알디니는 모든 실험기구를 가지고 런던으로 건너왔습니다. 영국에선 합법적인 시신 공급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신을 구하지 못한 의사들은 시체 도둑들과 거래를 하곤 했습니다. 알디니는 죽은 지 며칠이 아닌 몇 시간이 안된 식지 않은 시신이 필요했고 적당한 사형수를 찾기 위해 런던 뉴게이트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알디니는 뉴게이트 감옥 깊숙한 곳에서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조지 포스터'로 유일한 문제는 포스터가 아직 교수형 판결을 받지 않은 것뿐이었습니다. 포스터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결국 유죄판결을 받게되고 알디니는 실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게됩니다.
1803년 1월17일, 왕립 외과 대학교로 포스터의 시신이 도착하자마자 알디니는 배터리를 켜고 프로브를 포스터의 몸에 갖다댔습니다. 그러자 포스터의 시신이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죽음의 강을 건넜던 이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는 듯 보였습니다.
알디니는 두번째 전극을 포스터의 항문을 통해 직장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이로인해 방전의 축이 뇌를 타고 척수로 옮겨오면서 포스터의 들썩임은 곧 격렬한 요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시신의 눈이 떠지면서 알디니가 바라고 바라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시신의 가슴이 호흡하는 것처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지나않아 시신은 움직임을 멈췄고 더이상 호흡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디니는 폐의 움직임을 다시 살리기위해 처절하게 시신의 몸에 전류를 더 넣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818년, 천재 여성 작가 메리 셸리의 손에서 한권의 공포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알고있는 '프랑켄슈타인'입니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 소설 속 물리학자의 실제모델이 바로 '지오바니 알디니'였습니다. 지오바니 알디니의 친한 친구의 딸이었던 메리 셸리는 '광기의 실험'에 대해 잘알고있었고 광기의 과학자, 과학기술의 오만이 재앙이 되어 인류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