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전장을 휩쓸었던 12살의 해군 베테랑

캘빈 그레이엄(Calvin Graham)은 성장발육이 빠른편이었습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성숙해 보였던 그레이엄은 열한살이 되던해 면도를 하기 시작했으며, 보통의 어른들처럼 이야기 하기위해 깊은 목소리로 말하는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계부와 함께 사는것이 싫어 자신의 형과 따로 집을 나와 살던 그레이엄은 방과 후 길거리에서 신문을 판매하고 전보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레이엄의 이러한 행동들은, 그 누구보다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빠르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다는 사실과 함께 사촌 중 몇명이 전투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지금 현재 삶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도 국가를 위해 일본군과 싸워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입영이 가능한 나이는 17세 였으며 부모님의 동의가 있는 상황이라면 16세도 군대에 입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12살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정식적으로 입대를 하기 위해서는 4년이란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그에게는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군에 입대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레이엄은 어머니의 서명을 위조하였고, 지역 호텔에서 공증인을 훔쳐 입대에 필요한 서류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따로살고있던 어머니에게는 잠시 친척집에 다녀 오겠다는 말만을 남긴채 큰 형의 옷과 페도라를 걸쳐 입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서명을 위조하고 공증인을 준비했다고 모두가 입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레이엄이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신병의 정확한 나이를 파악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치아검사 였습니다. 치아는 그 누구보다 어린아이들을 걸러내기 좋은 방법이였고, 그레이엄은 무엇을 해야 이 난관을 헤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레이엄의 앞에는 14~15살 정도 되보이는 두명의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보다는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딱봐도 군대에 입대하기에는 조금 어려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치아검사를 통과했고, 자신은 불합격을 받았습니다. 그레이엄은 치과의사에게 자신이 17살이라 계속해서 주장했지만 의사는 치아 검사 결과 12살 정도인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자 그레이엄은 자신의 앞에 받았던 두명의 남자가 14~15살 정도로 보였는데 통과시켜주지 않았냐며 그들을 데리고 와서 다시한번 확인해보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레이엄은 계속해서 검사실을 시끄럽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밀려있는 상황에 귀찮아 지는것이 싫었던 의사와 군인들은 그를 통과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해서 캘빈은 미해군 신병교육대에 입소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6주간의 훈련을 받게되었습니다. 6주간의 고된 훈련을 마친 그레이엄은 그후 진주만으로 배치를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신형 군함인 USS South Dakota에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2년 10월 25일, 마침내 그의 인생에 첫번째 해전이 산타크루즈에서 발발했습니다. 40mm 대공포 장전수였던 그는 첫번째 그의 전투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200여명의 선원들이 전사하였고 USS 호넷과 USS엔터프라이즈에 손상을 입었지만, 일본은 가장 중요했던 정예 조종사들이 148명이나 사망을 했습니다. 당시 해전에서 26기의 적기를 격추시켰던 USS 사우스 다코타의 선원들은 모두 미 해군 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일이 흘렀을때 과달카날 해안에서 일본과 2차 해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격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와중 전기장치가 고장나면서 USS 사우스 다코타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그로인해 8개의 일본 구축함으로부터 42발의 포탄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39명이 전사하고 59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레이엄도 포격 파편에 의해 얼굴과 입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부상당한 동료들을 의무실로 옮겨주었습니다. 


해전이 끝난 후 USS 사우스 다코타가 수리를 위해 다시 브루클린 항구로 돌아왔을때, 그레이엄은 부상자에게 제공되는 퍼플 하트(Purple Heart)와 Bronze Star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쟁영웅' USS 사우스 다코타의 선원들이 브루클린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미 전역에 전해질 당시, 집에있던 그의 어머니도 신문을 통해 그레이엄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자신의 아들인것 같다며 해군과 접촉을 하였고, 그곳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진짜 나이가 12세라는 사실을 말해버리게 되었습니다.


미성년자가 불법적으로 입대를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그레이엄은 텍사스 주 코퍼스 크리스트에 있는 해군 감옥에 3개월 동안 갇히게 되었으며, 해군은 그 후 그레이엄에게 불명예 퇴역 및 메달과 베테랑의 대한 혜택을 모두 빼앗아 버렸습니다.




불명예 퇴역을 당한 그레이엄은 그후 조선소에서도 일하고, 해병대에 입대하기도 했지만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제대로 힘을쓰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후 그는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 메달과 베테랑에 대한 유익을 되찾는데 사용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