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는 '도둑' 때문에 걸작이 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Mona Lisa)'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얼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나리자는 무수한 TV쇼, 영화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형태로 패러디되어 모든 언어의 예술서적에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매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7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나리자는 실제 30" x 21" 의 크기밖에 되지 않으며, 실제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본 사람들의 대다수는 생각보다 별거없다(화려하지 않다)라고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모나리자는 존경받는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위대한 예술작품이지만, 그의 기술이 '모나리자'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니였다라고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를 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모나리자의 진정한 명성은 '빈첸조 페루기아(Vincenzo Peruggia)'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사람으로부터 나온것이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페루기아는 루브르 박물관의 정식직원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전시용 보호 유리 작업을 위한 목적으로 루브르에 고용되었기 때문에 박물관 직원들에게 전혀 낯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1911년 8월 21일 월요일, 페루기아는 그의 작업복 아래 숨겨진 모나리자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유히 걸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모나리자'를 훔쳐 달아나려 했을까요?





Vincenzo Peruggia에게 이 모나리자는, 애국심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이 모나리자가 나폴레옹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도난 당한 미술품이라 생각했으며, 모나리자를 모국에 반납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진 촬영을 위해 회화들을 잠시 벽에서 떼어놓는 일이 매우 흔했기 때문에, 직원들은 모나리자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그 다음날까지도 알지 못했으며, 사진사와 경비원이 함께 확인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모나리자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였을때 이미 페루기아는, 모나리자를 자신의 아파트 창고에 집어 넣은 후 였습니다. 





모나리자가 없어진 날부터 2년 내내 '모나리자 강도'는 국제뉴스가 되었고, 이 이야기는 프랑스를 넘어 전세계의 신문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찰은 도둑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색하였고, 의심이 가는 모든 사람들을 심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심문을 받는 사람 중에는 프랑스의 유명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뿐만 아니라 입체파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모나리자 도난사건 이후로 루브르 박물관은 일주일간 문을 열지 않았었는데, 신기하게도 오픈 후 박물관을 찾는 사람의 대다수가 모나리자가 걸려 있었던 자리를 보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우스갯소리로, '페루기아가 다른 그림을 도둑질했다면, 아마 그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상황이 너무 커지자 페루기아는 기존에 세워놨던 모든 계획을 중단하게 되었고, 일단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조용히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이란 세월을 잠자코 기다렸지만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인내심이 극에 달한 페루기아는 결국 1913년 피렌체의 예술품 판매업체인 Alfredo Geri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페루기아는, '자신에게 조금의 보상만 준다면 모나리자를 고국으로 돌려보내겠다'라는 말을 전달하였습니다.





알프레도 게리는 '그림을 확인하고 싶으니 Uffizi 미술관에서 만나자'라는 제안을 페루기아에게 건넨 후, 바로 경찰에게 '모나리자를 훔쳐간 범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라고 신고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모나리자를 훔쳐간 지 2년 만에 페루기아가 잡히게 되었고, 세상을 놀라게 했던 범죄가 마침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나기로 했던 장소 '우피치 미술관'은 모나리자가 공식적으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약2주둥안 그림을 전시할 수 있었으며, 그 후로 모나리자를 훔치거나 손상시키려는 사람들이 몇건 더 있긴 했었지만 그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빈첸초 페루기아는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당시 이탈리아 당국은 국가를 위해 모나리자를 훔친 페루기아의 '애국심'을 높이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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