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며, 고고학 및 인류학 연구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또한 고대세계의 신비와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기전 살았던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됩니다. 인류역사상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우리는 선조들의 삶을 추론하고 연구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으로 과학자들은 역사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아래에 인류의 역사를 바꾼 7대 고고학적 발견을 소개합니다.
7. 제임스타운
제임스타운은 1607년 영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설한 최초의 항구적인 개척지로,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곳입니다. 개척의 어려움과 질병에 시달리고, 굶주림과 인디언의 습격 등 많은 어려움을 견뎌 1619년에는 아메리카 최초의 식민지의회가 설치되었고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으며 노예 수입 등으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된곳입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소속과학자들이 이곳에서 14세 소녀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식인'흔적을 발견했는데, 유골은 마치 고깃감처럼 절단된 채 발견되었고 분석결과 살이 인위적으로 발라진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엄혹한 추위와 가뭄으로 수많은 개척자들이 굶어죽은것으로 전해져 식인에대한 전설이 내려오긴했지만 이번 유골조사결과로 역사학자도 부정하기 힘든 가장강력한 식인의 증거가 밝혀진 셈입니다.
6. 리처드 3 세
리처드 3세는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왕위를 찬탈한 후 랭커스터파의 리치먼드 백작 헨리(헨리 튜더)와 싸우다 패해 보즈워스에서 전사한 영국최악의 폭군으로 평가받는 왕입니다. 유해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 묻혔으나 1530년대에 수도원이 파괴되면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8월 레스터의 공용주차장에서 한 유골이 발견되었고 조사결과 유골 치아와 다리뼈에서 뽑아낸 DNA가 리처드 3세의 누이 2명 유전자와 99.999% 일치한다며 리처드 3세의 유골임이 공식 확인되었습니다. 이 발굴은 수수께기 속으로 사라진 리처드 3세의 유골이 500여 년 만에 발굴된 가장 드라마틱한 발굴사건입니다.
5. HEADLESS VIKINGS OF DORSET
2009년 잉글랜드 도싯주의 웨이머스 해안가 마을에서 도로작업을 하던 중 무더기로 54개의 뼈와 51개의 두개골 유해를 포함한 다량의 무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해의 신원, 매장된 년도, 참수 이유 등은 해결문제로 남아있었습니다.
이후 영국 관계당국은 유해의 치아를 분석해 이들이 수 천년 전 날카로운 도구로 참수된 바이킹이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들은 바이킹이 자주 이 지역을 침략했던 암흑시대에 처형된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학자들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앵글로색슨족이 영국 노르망디를 점령하기 전 890년부터 1030년의 유해임을 밝혀냈는데 처형된 젊은 남성들이 바이킹이었다는 사실을 밝힌것은 당시 시대의 역사를 알게되는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4. 괴베클리 테페
`괴베클리 테페`는 터키 남부에 위치한 고대 유적으로써 1963년 처음 발견되었고, 1994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탄소연대 측정에 의하면 기원전 9500년경에 축조된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스톤헨지보다 6000년 먼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는 7000년이나 앞선것이었습니다.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이 기원전 3만5000~1만1000년의 작품이니, 괴베클리 테페는 빙하기가 끝났을 때 구석기시대 인류가 동굴 밖에 나오면서 짓기 시작한 최초의 건축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인류는 불은 사용했지만 바퀴는 없었고 짐을 운반해줄 가축도 없었기때문에 온전히 인간의 노동력으로만 지어진 신전입니다.
3. 드마니시
'드마니시 '는 지난 2007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부터 약 93km 떨어진 작은 마을 드마니시의 한 구덩이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추정 시기는 홍적세 초기인 약 180만년전인데 이 시기의 성인 남성 2명, 노인 1명, 여성 1명, 어린이 1명 등 5개의 유골이 완벽한 형태로 한꺼번에 발굴되기는 학계에서 유례없는 일이었습니다. 치타 등 고양이과 동물 유골과 함께 발굴된 것으로 볼때 이들은 사냥을 하다가 수백년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구덩이에 빠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특히 이 5개의 유골이 기존 인류진화학설로는 설명할 수없는 작은 두뇌(약 550㎠), 큰 치아, 긴 얼굴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현생 인류가 여러 종으로 나뉘어 진화한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두 같은 '하나의 종'으로 봐야한다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었습니다.
2. 서턴 후
배를 이용해 시신을 안장하는 일은 영국에서 드물었으나, 1939년 여러 개의 고분에서 발견된 이 배 무덤은 그러한 방식을 보여 주는 가장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이 무덤에서 영원한 휴식에 든 이는 이스트 잉글리아의 래드월드라는 강력한 왕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다양한 앵글로 색슨 왕국 가운에 '높은 왕'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624년 혹은 625년에 사망한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배는 썩어 없어졌으나, 지면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내부에는 유해가 없으나, 역시 부패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아 있는 것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보물(현재 이 대부분은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로 앵글로색슨 족의 강력한 지도자가 누렸던 사치스러운 생활과, 그가 다스리던 민족의 해외 무역이 어느 범위까지 뻗어 나갔는지를 새로이 알도록 해 주는 발견이었습니다. 서턴 후 유적은 1998년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되었으며 최근에 이루어진 발굴 작업으로 근처에서 묘지 유적을 발견해 냈습니다. 실제 크기로 재구성해 낸 원래의 배 무덤이 전시되어 있으며, 대영 박물관에서 빌려온 유물들이 임시로 전시 중입니다.
1. 메갈로사우루스
‘큰 도마뱀’이란 뜻의 메갈로사우루스 최초의 화석은 1820년에 영국에서 발견되었고, 그 뒤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고르게 발견되었습니다. 이 공룡은 1824년 ‘공룡’이라는 공식 이름이 생겨나기 전에 이름 붙여진 최초의 공룡입니다.
육식공룡답게 성질은 무척 사나웠고, 앞다리는 짧지만 세 개의 발가락에 갈고리 같은 발톱이 있어 사냥할 때 유리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뒷다리는 크고 튼튼하지만 뼈의 구조로 보아 그리 빠르지는 못했을 것으로 예상되며 꼬리 또한 탄탄하여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은 물론 사냥할 때 후려치는 데 쓰인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메갈로사우루스의 화석발견은 인류가 공룡에 대한 고고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