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말,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의 창립자인 월터 크라이슬러(Walter percy Chrysler)와 제너럴 모터스의 존 J. 레스콥(John Jakob Raskob)은 서로 누가 더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봤을때 두명의 부유한 재벌은 각각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하게 되었고, 부유한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경쟁심 덕분에 뉴욕을 대표하는 두개의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을 대표하고 있는 이 두개의 건축물과 관련된 스토리는, '이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45년 7월 28일,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주니어 중령은 베드포드 육군 비행장(Bedford Army Air Field)에서 뉴욕 잭슨 하이츠에 있는 라구아디아(Laguardia) 공항으로 가는 매우 흔한 하나의 수송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수송 임무를 부여받은 프랭클린 중령과 두명의 승무원 그리고 귀향차 비행기를 얻어타게된 해군 항공 기술자는 그렇게 B-25 미첼 폭격기를 이용해 라구아디아 공항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평소보다 더 많은 안개가 끼어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안개는 프랭클린 중령의 시야를 점점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안개로 인하여 시각이 점점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프랭클린 중령은 즉시 관제탑에 무전을 걸게 되었고, 연락을 받은 관제탑은 잠시 후 프랭클린에게 라구아디아 공항 대신 뉴저지에 위치하고 있는 뉴어크(Newark)공항으로 착륙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뉴어크 공항으로 착륙하기 위해 먼저 어느정도의 시야확보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프랭클린 중령은 B-25 미첼 폭격기를 천천히 그리고 낮은 고도로 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의 눈앞에 마천루인 크라이슬러 빌딩이 나타났고, 빌딩을 보고 당황을 하게 되면서 왼쪽으로 돌려야 할 기수를 오른쪽으로 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1945년 7월 28일 9시 40분,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주니어 중령이 운전하던 B-25 미첼 폭격기는 그렇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북쪽 78층과 80층 사이를 충돌하게 되었으며, 비행기가 건물과 충돌하면서 제트 연료가 폭발하는 바람에 초고층 건물에 불이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의 엔진 중 하나는 거리 건너편에 있는 Henry Hering의 펜트 하우스로 들어가 그의 75,000달러 상당의 예술 작품을 파괴했고 나머지 비행기의 잔해들은 빌딩 주변에 착륙하면서 뉴욕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는 프랭클린 중령과 두명의 승무원, 해군 기술자를 포함하여 14명의 사망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0층에서 일을하고 있던 베티 루 올리버(Betty Lou Oliver)라는 이름의 여성은 다행히 충돌과 화재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데, 구조대가 큰 부상을 당한 그녀를 엘리베이터로 옮기던 중 사고로 약해진 엘리베이터의 줄이 끊겨 버리는 바람에 그대로 75층 아래로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놀라운 것은, 75층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올리버가 치유 가능한 골절상만 입은 채 지하층에 살아있었다는 점 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엘리베이터 추락으로 인한 생존 사례 중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고, 기네스북은 현재까지도 올리버를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했던 유일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녀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엘리베이터가 나선형으로 뭉쳐진 케이블에 의해 완충이 되었다는 것과 좁은폭이 공기 압축기 역할을 해 타격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는 의견이 가장 신빙성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강타했던 B-25 미첼 폭격기 사건은 열 네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고 당시 기준으로 약 1백만 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 했을때 약 140억 규모의 피해를 남긴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는 당시 초고층에서 발생한 최초의 화재이자, 비행기가 초고층 건물에 충돌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