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역사 브루투스 너마저? 및 이안감독

10월 23일에 일어난 역사적인 일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자살했고 베들렘 병원이 설립되었으며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감독 이안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셀레나 킨타니야가 팬클럽 회장의 총에 맞아 사망한 날입니다.

 

 

 

 

기원전 42년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자살

기원전 42년 10월 23일은 고대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자살한 날입니다. 고대 로마시대 최고 명문 유니우스 가문의 일원이었던 브루투스는 가이누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등과 함께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군인, 성직자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을 주동한 인물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7년 젤라 전투에서 승리하고 보낸 편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로 알려져 있기도 하며 황제 개념의 시초가 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대사인 ''브루투스, 너마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친구였던 브루투스를 포함한 무리에게 암살당했을때 외쳤던 말로 요즘에는 믿었던 상대에게서 배신을 당할 때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브루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와 마크 안토니우스가 이끄는 군대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는데 이는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왕위를 계승하는 길을 여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1247년 베들렘 병원 설립

1247년 10월 23일은 베들렘 병원이 설립된 날입니다. 원래는 성모마리아에게 헌정하기 위한 수도원의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1377년부터는 정신 질환이나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정신병원으로 탈바꿈한 베들렘 병원은 사실 말이 병원이지 수세기 동안 정신질환자들을 감금한 수용소나 다름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정신질환자는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중세는 물론 20세기 초까지도 선천적 기형 및 정신 질환 등을 하늘의 벌로 여겼으며 이와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18세기에 그려진 윌리엄 호가스의 작품은 당시 악명 높았던 베들렘 정신병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를 예방하기 위해 머리를 삭발한 남자가 거의 알몸의 모습으로 쇠사슬이 묶인채 기대어 앉아있고 멋지게 차려입은 두 명의 여성들이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수감자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실제 여러 기록에 따르면 병원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수감자와 관련이 없는 일반 방문객들을 모아 정신질환자들의 공개 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찬물 목욕, 천장에 매달린 채 빠르게 회전시키는 회전 요법과 같은 치료를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54년 이안 탄생

1954년 10월 23일은 대만 태생의 영화감독 이안이 태어난 날입니다. 1991년 쿵푸 선생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이안은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를 찍고 난 이후 할리우드로 넘어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케이트 윈슬렛, 휴 그랜트등이 참여했던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통해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안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2000년 영화 와호장룡은 할리우드 외국어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하게 되었고 2006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시아인 감독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아시아인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기립박수와 함께 두번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안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각각 2번씩 수상했으며 미국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영국 영화계에서도 큰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시아계 감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안을 미국 서부극부터 중화권 사극까지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장르를 어색함 없이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감독이라 평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 셀레나 퀸타닐라의 살인범 유죄판결

1995년 10월 23일은 셀레나 퀸타닐라를 살해한 욜란다 살디바르가 1급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날입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샤키리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라틴아티스트 중 한 명이자 테하노 음악의 여왕으로도 불리우고 있는 셀레나 퀸타닐라는 1993년 2월 7일 텍사스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열린 공연 실황을 담은 음반으로 첫 그래미 상을 수상했습니다. 테하노 뮤지션으로는 처음으로 수상에 성공했던 셀레나는 1994년 4집 앨범으로 빌보드 라틴차트 1위, 멕시코 차트에서 97주간 1위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롤링 스톤에서 선정한 명반 500선에도 선정되었습니다.

 

 

 

1995년 셀레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영어 앨범 제작을 위해 여러 유명 작곡가들과 함께 첫 크로스오버 앨범을 준비해나가고 있었는데 팬클럽 회장이자 셀레나의 굿즈 판매를 담당하고 있던 욜란다 살디바르에게 총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6개월전 자금을 횡령한 것을 들켜 해고당했던 욜란다 살디바르는 해고 취소를 요구하기 위해 셀레나를 찾아갔다가 그녀가 거절하자 숨겨온 총으로 그녀를 쏘게 되었습니다. 1급 살인혐의로 기소된 욜란다는 30년 후 가석방 신청이 가능한 종신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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