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역사 시스티나 성당 최후의 심판 및 리스본 대지진

11월 1일에 일어난 역사적인 일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였으며 윌리엄 틸먼이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을 향한 암살 시도가 있었던 날입니다.

 

 

1512년 시스티나 성당 천장 공개

1512년 11월 1일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벽화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날입니다. 미켈란젤로가 4년이란 시간에 걸쳐 완성시킨 역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시스티나 성당은 건축을 시작한 교황 식스토 4세의 이름으로부터 명명되었습니다. 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73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1481년에 완성된 시스티나 성당은 지어진지 약 27년이 지나고 나서야 천장 벽화가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1508년 미켈란젤로는 바티칸에와서 예배당 천장에 프레스코화를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피에타'로 24세의 나이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다비드상까지 만들었던 그였지만, 어릴 때 회화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회화를 꺼려했기 때문에 프레스코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계속해서 거절했었습니다. 율리오 2세의 협박에 가까운 의뢰때문에 억지로 천장화를 맡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화작품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산치오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그려져 있는 시스티나 성당은 1984년 바티칸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1755년은 11월 1일은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날입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성인들을 한번에 기념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이었던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 40분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하게 되었습니다. 약 5분간 지속되었던 최초 진동은 리스본의 건물 85%를 파괴했으며 이로인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건물들이 붕괴되는 아비규환 속 살아남은 사람들은 부두, 강 등 탁 트인 곳으로 달려갔는데 지진이 발생하고 약 40분 후 엄청난 크기의 쓰나미가 이곳을 덮치면서 모두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뒤 2번의 해일이 더 발생하면서 리스본은 물론 포르투갈 타 지역 모로코, 스페인 등도 큰 피해를 입었으며 아일랜드의 골웨이, 잉글랜드 대부분의 해안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 대지진은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 등지에서 약 4만 명에서 5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으며 왕궁에 보관되어 있던 행정 체계, 각종 유서 깊은 기록들, 신대륙에서 목숨 걸고 탐험한 모험가들의 지도들까지 모두 없애버리고 말았습니다. 포르투갈 가톨릭을 비롯해서 영국 성공회, 프로테스탄트 성직자 생존자들은 평소 서로 원수지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함께 기도했고, 얼싸안은 채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현대 지진학자들은 당시 지진을 리히터 8.5~9. 정도에 달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1924년 윌리엄 틸먼 살해

1924년 11월 1일은 윌리엄 틸먼이 살해당한 날입니다. 19세기 후반 캔자스와 오클라호마에서 법률가이자 정치인, 보안관이었던 윌리엄 틸먼은 오클라호마에서 미국 보안관 부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악명 높은 무법자 빌 두린을 체포함과 동시에 다른 조직원들까지 일망타진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 서부 지역의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1960년 국립 카우보이 & 웨스턴 헤리티지 박물관의 위대한 서양인들의 전당에 헌액 되기도 했던 틸먼은 1924년 오클라호마 크롬웰 거리에서 부패한 연방 요원의 총에 맞아 70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암살 시도 실패

1950년 11월 1일은 푸에르토리코의 민족주의자 오스카 코아조와 그리셀리오 토레솔라가 워싱턴 DC에서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을 암살 시도했던 날입니다.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전임자였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취임한 지 약 한 달 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부통령이 된 지 82일 만에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부터 냉전기로 이어졌던 급격한 세계사 흐름 속 냉철한 판단력으로 전후 질서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트루먼 대통령은 6.25 전쟁 당시 한국에 미군을 파병해주기도 했습니다.

 

 

 

 

1950년 11월 1일 푸에르토리코의 민족주의자 오스카 코아조와 그리셀리오 토레솔라는 현재 백악관을 찾는 외국 정상들에게 제공되는 공식 숙소 워싱턴 '블레어 하우스'에서 트루먼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경호원들의 빠른 대응으로 미수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토레솔라는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고 코아조는 체포되었다가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습니다. 다음 날 어떤 기자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경호원 없이 암살범과 맞닥뜨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었는데 트루먼은 한치의 주저도 없이 ''그 자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목구멍에 처박은 후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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