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세명의 사람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세명의 사람들

<진 힐리어드>

1980년 12월의 어느 밤 19세의 진 힐리어드는 미네소타주 렝비에서 친구들과 밤을 보낸 후 아버지의 포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공기는 몹시 차가웠고 기온은 영하 25도에 달했습니다. 그녀는 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이 없는 후륜 구동 차량을 타고 집으로 가던 도중 차가 도랑으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차 안에서 영하 25도의 강추위를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힐리어드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친구 월리 넬슨의 집까지 3.2km를 걸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추운 기온과 밤의 어둠으로인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지긴 했지만 힐리어드는 마침내 친구 넬슨의 집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넬슨은 자신의 집 문 앞에서 약 4.5m가량 떨어진 마당에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진 힐리어드가 뻣뻣하게 얼어붙은 채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넬슨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나는 힐리어드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판자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있었던 힐리어드의 코에서 거품이 몇 개 나오는 걸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넬슨은 얼어붙은 힐리어드를 차에 태운 뒤 포스톤에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의사들은 힐리어드의 상태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피부는 너무 얼어서 피하 주사 바늘로 뚫을 수 없었고 그녀의 체온은 체온계에 기록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주치의인 조지 사더 박사는 “몸이 차갑고 완전히 단단해 마치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 조각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었습니다. 온열 패드가 그녀의 몸을 아주 조금씩 녹여가고 있을 때 의사들은 약한 맥박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진의 체온은 ​​정상보다 훨씬 낮은 상태였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깨어난 힐리어드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아침 내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적처럼 보였던 것이 진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힐리어드는 그저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것 같다''라고만 말했고, 아버지의 차를 망가뜨린 것에 대해 혼날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Carlos Camejo>

Carlos Camejo라는 이름의 베네수엘라 남성이 카라카스 근처에서 발생한 끔찍한 고속도로 사고에 연루되어 사망 선고를 받고 영안실로 옮겨졌습니다. 검시관은 죽은 카를로스의 얼굴을 절개하다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은 사람이 피를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심각한 실수가 있었음을 깨달은 검시관은 사람들을 불러 절개 부위를 꿰매기 시작했는데 이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 카를로스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영안실에 나타났습니다. 영안실에 시체가 없는 것을 확인한 카를로스의 아내가 급하게 병원 복도로 달려나갔는데 그곳에서 멀쩡히 걸어 다니고 있는 남편 카를로스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카를로스는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얼굴 흉터와 함께 부검 문서를 지역 신문에 공개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이 사건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 관계자 측에게 연락을 시도해 보았으나 그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엘라 루쿤도>

2004년 노엘라 루쿤도는 어린아이들을 비롯 많은 사람들을 죽인 반란군을 피해 자신의 다섯 자녀와 함께 부룬디에서 호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콩고 난민인 벨렝가 카랄라를 만나게 된 노엘라는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한 후 멜버른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1월 노엘라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을 잃었습니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던 노엘라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무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호텔 방으로 돌아간 노엘라는 그의 남편 벨렝가로부터 한 통화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잠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는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들은 노엘라는 우울함도 달랠 겸 산책이나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방문 손잡이를 돌렸는데 그 앞에는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강도가 서있었습니다. ''소리 지르면 쏜다''라고 말하며 밖에 세워져 있는 차 쪽으로 손짓하는 강도의 말에 따라 천천히 차에 오르게 된 노엘라는 안대를 쓰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약 30분간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차가 멈춘 후 납치범 중 한 명이 노엘라에게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했냐?, 왜 이 사람이 당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냐?''라고 묻기 시작했고 노엘라는 ''어떤 사람이요? 전 그 누구와도 문제가 없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납치범이 얘기했습니다. ''당신 남편 말이야''

 

 

 

 

 

 

 

납치범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노엘라는 ''남편이 그럴리 없다. 당신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대답했지만 그들은 잠시 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다음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목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엘라는 ''그녀를 죽여''라고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과 한 시간 전 어머니의 죽음을 위로하고 신선한 공기라도 마시라고 조언했던 다정한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 노엘라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 이제 곧 죽겠구나라고 생각한 그때 납치범 중 한 명이 ''우린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로 3,400 호주 달러를 받은 납치범들은 그동안 남편과 통화했던 기록과 음성이 담겨있는 메모리카드를 노엘라에게 건넨 뒤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도록 80시간을 주겠다. 하나님이 당신을 도운다면 호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돌아가서 당신과 같은 여자들에게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줘라''고 말하며 그녀를 풀어주었습니다.

 

 

 

 

 

 

 

풀려난 즉시 호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노엘라는 교회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로부터 3일 후인 2015년 2월 22일 멜버른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지역 사회에 ''자신의 아내가 비극적인 사고로 사망했다''며 말하고 다녔고, 지역 사람들은 아내를 잃은 그가 불쌍하다, 8자녀를 앞으로 혼자 키워나가야할 그가 안쓰럽다며 돈을 기부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집 앞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노엘라는 자신을 기리는 추모식이 끝난 직후 떠나는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는 남편 앞에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알려진바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를 죽이려고 한 이유는 노엘라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남편은 살인 교사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노엘라는 잠이 들려고 할 때마다 ''아내를 죽여''라고 하는 벨렝가의 목소리가 들려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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