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민낯을 보여준 침팬지 '피에르 브라소'

1964년 추상 예술가 '피에르 브라소'(Pierre Brassau)의 최초이자 마지막 전시회가 스웨덴 예테보리에 위치하고 있는 Gallerie Christinae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피에르 브라소의 작품을 감상했던 모든 예술 평론가들은 그의 파워풀 하면서도 섬세한 붓 터치 기술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피에르 브라소는 이전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였으며, 이로인해 그의 작품을 감상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재능있는 예술가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피에르 브라소의 전시회가 끝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을때, 모든 평론가들은 엄청난 분노와 함께 창피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피에르 브라소는 스웨덴 Boras Djurpark 동물원에 살고 있는 침팬지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대에 존경받고 있던 수많은 예술 평론가들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었던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현지 기자가 계획한 정교한 사기극이었습니다.




당시 예테보리는 수많은 화랑 및 예술을 평가하는 평론가들로 가득했고 추상 미술에 대한 인기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쭉 지켜봤던 Goteborgs-Tidningen의 신문기자 악셀손(Ake Dacke Axelsson)은 이 예술 속물들이 실제로 추상 작품의 예술성에 대해 얼마나 잘 식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하나의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악셀손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동물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프리카계 침팬지 '피터'의 손에 유화 물감과 붓을 쥐어주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침팬지 피터'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유화 물감의 '맛'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유화 물감을 먹어치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던 피터에게 붓을 쥐어주기 위해서, 악셀손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바나나를 꺼내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피터는 매우 손쉽게 바나나란 미끼에 걸려들었고, 악셀손으로부터 바나나를 더 얻기 위해 피터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피터에게 가장 맛이 있었던 색깔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터는 특히 자신의 그림에 코발트 블루를 많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악셀손은 바나나를 미끼로 계속해서 피터가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고, 피터는 바나나를 먹기위해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주후, 피터가 여러작품을 완성해 내면서 악셀손은 마침내 피터의 작품들을 Gallerie Christinae에 전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대로 피에르 브라소라는 가명을 쓴 '피터'의 작품들은 수많은 예술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스웨덴의 유명한 평론가 중 한명이었던 앤더버그란 이름의 남자는 피터의 작품을 본 후 '그의 붓질은 거칠면서도 매우 깔끔하다'라는 말과 함께 '마치 춤추는 발레리나 같은 느낌을 준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작품들이 사실 피터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억지로 그린 그림이었다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공개했을때 조차도, 앤더버그는 침팬지가 그렸다는 것에 상관없이 이 작품들은 모두 '예술성이 정말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계속해서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창피했지만 이것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고수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피터의 작품이 뛰어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악셀손이 벌인 이 사기 전시회는 그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평론가들의 민낯과 허영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추상 작품 그리고 평론가들의 역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참고로 피터는 그후 영국의 체스터 동물원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바나나를 양껏 먹으며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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