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도 날지 않았던 미 공군의 '슈퍼 전투기'

1955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투시노(Tushino)에어쇼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Myasishchev M-4 "Bison'' 이라는 이름의 폭격기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투시노 에어쇼에는 미국의 항공 안전 담당관도 참석하고 있었는데요. 소련의 새로운 폭격기 Myasishchev M-4를 목격한 담당관은 즉시 워싱턴에 전화를 걸어 '소련이 엄청난 수의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투시노 에어쇼에서 관객들에게 3대의 Myasishchev M-4가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 준것으로 확인되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속된 냉전시대에 갑자기 소련이 핵 폭격기를 공개했으니 미국도 이 위협에 대응할 새로운 무기의 필요성을 느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미국은 전략폭격기에 대한 요격체계의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고 적의 핵 폭격기가 요격이 되었을때 자신들의 영토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원거리에서 요격할 수 있는 '장거리 요격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해서 탄생한것이 바로 XF-108 레이피어(Rapier)인데요. 존재만 했다면 이 초 장거리 요격기는 역사상 가장 크고 무거운 전투기가 될 수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XF-108은 1950년대의 가장 멋진 전투기가 되는 대신 잠시 스쳐갔던 순간의 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59년 1월, 미 공군은 노스 아메리칸의 설계안을 토대로 한 실물크기의 XF-108 모형을 완성했습니다. 당시의 계획대로라면 XF-108 레이피어는 1961년 3월 첫 비행을 준비하였을 것이고, 1963년 7월에는 ADC의 비행 중대에 합류가 되어야 했습니다.




크랭크된 델타 날개를 특징으로한 XF-108은 마하3의 속도 및 1,100해리의 전투반경을 예상했으며 미국 최초로 적외선 검색 및 추적 시스템이 결합된 Hughes An / ASG-18 레이더와 XB-70 발키리 폭격기에서 동체로 사용되는 두대의 General Electric J93 터보 제트 엔진을 추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미국은 현재 소련의 최우선 과제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전략 핵무기로 바꾸는 것이며, Myasishchev M-4 폭격기는 매우 소수만 생산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말은 XF-108이 Myasishchev M-4폭격기를 따라다니는 동안, 소련은 ICBM으로 핵탄두를 미국에 보낼 수 있다는 말을 의미하는데요. 당시 미국은 XF-108의 비용이 계속적으로 상승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예상하고 있던 소련의 전략까지 완전히 달라지게 되면서 결국 펜타곤이 1959년 9월 23일 F-108 레이피어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실물 크기의 모형을 바탕으로 추측했었던 XF-108 레이피어의 예상무게는 당시 공허중량 22톤에 최대 이륙중량이 무려 46톤에 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결국 역사상 가장 크고 무거운 요격기이자 '슈퍼 전투기'가 될것으로 예상되었던 XF-108은 예산 문제와 소련의 예상치 못한 행보로 결국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레이피어'의 계획 자체가 완전히 실패였던 것은 아니었는데요. 최초의 적외선 검색 및 추적 시스템이 결합된 레이더가 될것이라 예상되었던 Hughes An / ASG-18 레이더와 GAR-X미사일의 경우에는 F-111, F-14, A-5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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