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역사 마틴 루터 95개 탈출 마술 후디니 소울 서퍼

10월 31일에 일어난 역사적인 일

마틴 루터가 95개의 반박문을 게시했고 해리 후디니가 사망했으며 리버 피닉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베서니 해밀턴이 상어에게 팔 한쪽을 잃은 날입니다.

 

 

 

 

1517년 마틴 루터 95개의 반박문 게시

1517년 10월 31일은 마틴 루터가 95개의 반박문을 게시한 날입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는 원래 로마 가톨릭 수도회의 수도사제였으나 가톨릭 교리에 반발하여 끝내 파문당한 후 독자적인 노선을 개척한 인물입니다. 1515년 당시 레오 10세는 마그데부르크와 마인츠의 대주교이자 할버스타트의 주교인 알브레히트에게 일부 지역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도록 지시하였고 알브레히트는 면죄부 판매 책임자 요한 테첼을 임명했습니다. 면죄 판매 책임자를 맡게된 요한 테첼은 면죄부를 판매하기 위해 ''모든 죄에 대해 완전한 면책을 보장해 주며 적당한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면죄부의 혜택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까지 미칠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루터는 평소 동료 수도자들과 신학 교수들에게 면죄부에 대해 신학적으로 비판했고 이를 매매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일인지를 알리기 위해 95개 조항에 이르는 반박문을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성인대축일 전날인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이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 앞에 있는 '모든 성인 성당'의 문에 내걸었습니다. 당시 루터가 반박문을 게시했던 이유는 잘못된 면죄부 판매를 지적하기 위함이었고 그 공격도 면죄부 판매책인 테첼에 맞추어져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이단행위로 재판을 받게되었고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95개조 반박문은 개신교의 종교 개혁을 촉발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교파에 상관없이 모든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의 주인인 루터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1926년 해리 후디니 사망

1926년 10월 31일은 탈출 전문가 해리 후디니가 사망한 날입니다. 헝가리 태생의 유명 마술사 그리고 스턴트맨이자 영화제작자이기도한 해리 후디니는 탈출 마술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는 인물로 생매장, 감옥, 빙판 구멍, 고층 빌딩에 매달린 상자 등 모든 속박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이 제작한 특수 장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장치들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에게 독일군 수갑을 푸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탈출 기술외에도 '배로 강펀치를 받아도 멀쩡한 묘기'를 선보이곤 했었는데 몬트리올 공연이 끝난 후 분장실에 찾아온 대학생 조슬린 고든 화이트헤드가 대화 도중 ''당신은 배를 아무리 세게 쳐도 괜찮다면서요??''라는 말과 함께 힘을 빼고있던 후디니의 배를 갑자기 치는 바람에 맹장염이 발생하게 되었고 수술을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때문에 시간을 빼지 못한 후디니는 결국 맹장 파열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리버 피닉스 사망

1993년 10월 31일은 할리우드의 꽃미남 리버 피닉스가 사망한 날입니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초까지 할리우드의 최대 유망주였던 리버 피닉스는 꽃미남 외모와 더불어 뛰어난 연기력까지 갖춰 당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던 배우였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서 어린 인디아나 존스역을 맡았으며 영화 아이다호를 통해 미국 독립영화 시상식,  전미 비평가 협회, 베니스 영화제 볼피-컵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리버 피닉스는 헤로인, 코카인등 과다한 마약복용으로 1993년 10월 31일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의 남동생은 2019년 영화 조커의 주연을 맡았던 호아킨 피닉스로 그의 형 리버 피닉스가 사망하기 직전 911에 구조 전화를 건 음성이 아무런 동의없이 방송에 공개되고, 장례식에 리포터가 침입해 리버의 시신 사진을 찍어가는등 예의없는 모습에 염증을 느껴 잠시동안 할리우드를 떠나기도 했었습니다. 호아킨 피닉스는 할리우드의 미디어 체제를 굉장히 싫어하는 배우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2003년 베서니 해밀턴 팔을 잃다.

2003년 10월 31일은 베서니 해밀턴이 상어에게 팔 한쪽을 잃게된 날입니다. 미국의 서퍼인 베서니 해밀턴은 1990년생으로 7살때부터 프로 서퍼로 활동하였으며 처음 참가했던 Rell Sunn Memehune 대회에서 8살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10월 31일 하와이 카우아이에서 평소처럼 서핑을 즐기고 있던 해밀턴은 4.3미터의 대형 상어에게 왼팔을 잃게되는 끔찍한 사고를 겪게되었습니다.

 

 

 

 

 

당시 13살에 불과했던 해밀턴은 팔 한쪽뿐만 아니라 혈액의 60%까지 잃어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나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된덕에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베서니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서핑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고, 사고를 당한지 약 한달만에 다시 서핑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한팔로 균형을 잡고 일어선다는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끝없는 연습끝에 대회에 나간 해밀턴은 일반 선수들과 경쟁해 당당위 3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두아이의 엄마가된 베서니 해밀턴의 이야기는 '소울 서퍼'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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